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프가니스탄 왕국 (문단 편집) === 쿠데타와 공화국 전환 === [[모하마드 다우드 칸]]이 총리직에서 쫒겨난 이유는 그 자신이 지닌 지나친 범파슈툰 민족주의 성향도 있었다. 다우드 칸이 전 [[파슈툰인]]들의 통합을 외치며 [[파키스탄]] 내부의 파슈툰족들을 선동했고 그 결과 양국 간의 외교간계가 급격히 악화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총리직에서 해임된 다우드 칸은 끊임없이 재기의 기회를 노렸으며, 그 일환으로 자히르 샤의 근대화 개혁에 불만을 품고 있던 세력들과 힘을 합치기 시작했다. 한편 자히르 샤는 정당법, 지방의회법, 시의회법과 같은 여러 개혁 방안들을 도입하려다가 보수 세력의 강력한 반발로 철회하면서 국민들의 인기를 잃어갔다. 그 와중에 1971년 북부 지방에서 가뭄으로 심각한 기근이 일어나 수천명이 사망하자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는 땅으로 떨어졌다. 자히르 총리는 사임했지만 파장은 가라앉지 않았다. 다우드 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역습을 가했다. 국왕이 눈을 다쳐 치료를 위해 [[런던]]으로 요양을 떠난 틈을 타 수백여명의 군인들과 함께 1973년 7월 17일 아침에 [[쿠데타]]를 일으켰다. 몇 시간만에 아무 저항없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이 다우드 칸의 손 아래에 떨어졌고, 아침 7시에는 [[라디오]]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의 수립이 선포되고야 만다. 몇 백여년에 걸친 [[바라크자이 왕조]]의 통치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어찌나 쿠데타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던지 유혈사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다우드 칸은 군주제를 폐지하고 [[이탈리아]]에서 머물던 왕을 국외로 추방했다. 그 후 스스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기본적으로 외교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으며, [[소련]]의 지원을 받은 [[사회주의자]]라는 의심을 받았지만 경제 역시 아프간 왕정 시절과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훗날 다우드 칸은 [[독재자]]가 되어 대통령에게 초법적인 권한을 몰아주는 개헌을 해버리기에 이르렀고, [[소련]]과의 관계도 점차 악화된다. 결국 1978년에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가 또 일어나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이 무너져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이 수립되었지만, 이 민주 공화국마저 [[소련 붕괴]]와 함께 무너지고 [[탈레반]]이 득세하기 시작하며 아프간은 우리가 잘 아는 그 [[헬게이트]]에 진입하게 된다. 한편 구 아프간 왕족들은 왕정을 폐지하고 정권을 잡은 다우드 칸과 그의 일가들을 제외하면 다우드 칸 정권 수립 이후에 입국금지를 당하거나 국외로 추방되었으며, 망명 중인 구 왕가들은 1978년 다우드 칸 정권이 붕괴되고, 그 이후에 집권한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의 공산정권과 무자헤딘 정권, 탈레반 정권 치하에서도 귀국이 허용되지 않았다가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이 붕괴되고 나서야 아프가니스탄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참고로 옛 국왕 자히르 샤는 워낙 장수해서 아프간이 실시간으로 망해가는 꼴을 보며 [[2007년]]까지 살았는데, [[유언]]으로 '''난 저 세상에 가면 알라에게 천벌을 받을 것이오! 아름답던 내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으니...'''라는 안타까운 말을 남겼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